[이진영의 베이징 일기12]일본 '또' 꺾은 날 덕아웃 풍경

  • 등록 2008-08-23 오전 11:37:09

    수정 2008-08-23 오전 11:38:12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일본과 준결승이 열리기 전. 덕아웃엔 어쩔 수 없는 긴장감이 돌았다. 일본전이어서가 아니라 경기 자체에 대한 부담이 컸다.

초반엔 그래서 경기가 잘 안 풀렸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분위기가 달라졌다. 여기 저기서 "괜찮다" "차분하게 하나씩 하자"는 소리가 들려왔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면서 조금씩 편해져갔다.

4회 1점을 따라붙은 뒤엔 한결 분위기가 좋아졌다. 편하게 농담을 하는 선수들이 늘어났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화이팅을 내며 들썩였다.

(이)종욱이는 "오늘 아침에 말도 잘 못하는 두살짜리 조카가 전화를 하더니 "한국 금메달"이라고 외치더라. 그리고는 "한국 미국 쿠바 일본"이러는 거야. 이번에 딱 그 순서가 될 것 같지 않냐"고 했다.

(김)동주형도 "너희들 오늘 경기 전에 말 잠자리 돌아다니는 거 봤냐. 그거 보면 늘 좋은 일 생기더라. 오늘 무조건 이기겠는데"라며 거들었다. 말잠자리 보면 좋은 일 생긴다는 말은 처음 들어봤지만 괜히 마음이 편해졌다.

허긴, 오늘 아침에 내 여자친구도 "엄마가 집에 난꽃이 피었다며 좋은일이 생길것 같다고 하시더라"며 전화를 걸어왔었다. 모두가 그렇게 간절히 바라는 일이 안 될 턱이 있겠나 싶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점이 됐고 덕아웃 분위기는 최고조로 치달았다. 그런 분위기가 되면 절대 안 진다.

(이)승엽이 형 홈런이 나온 다음부턴 열광의 도가니였다. 그렇게 경기가 끝나고 우린 또 한번 하나라는 걸 확인했다. (이)용규는 경기 끝나고 운 것 처럼 알려졌는데 내가 볼 땐 9회초 수비 들어가면서부터 운 것 같다.ㅎㅎ.

경기가 끝나고 승엽이형이 인터뷰하면서 울 땐 나도 울 뻔 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같은 방을 쓰는 (이)대호 한테도 몇번씩이나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그럴 필요 없었는데...

우리는 모두 승엽이형이 언젠가는 해줄거라 믿었다. 승엽이 형이 해줘야 결국은 이길 수 있을거라 생각했고. 한번도 원망 같은거 해본 적 없는데... 어찌됐든 좋은 마무리를 해줘 많이 고맙다.

오늘 일본한테 이기면서 분명하게 바뀐 것이 한가지 있다 .승부를 받아들이는 일본 선수들의 자세가 달라졌다.

WBC때만 해도 일본 선수들은 경기에 지면 악수 할때 인상이 좋지 못했다. 어이없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선수들이 많았다. 악수 하면서 아무 말도 안했다. 우리한테 지는게 이상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우리에게 힘에서 밀렸다는 걸 인정하는 느낌이었다. 주장(미야모토)을 비롯해 여러 선수들이 "나이스 게임"이라며 악수를 청해왔다.

WBC에서 잘할때만 해도 승엽이 형이나 (박)찬호형 등 몇몇 선수들의 힘만으로 이기는 경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젠 모든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좋은 기량을 보여주며 이겼다는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우리 야구의 힘이 강해졌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오늘 승리 보다 앞으로 있을 경기들이 더 기대된다.
 
'이진영의 베이징 일기'는 이진영 선수가 직접 구술한 내용을 정철우 기자가 정리한 것입니다. 올림픽 기간 중 계속 연재될 예정입니다. 이진영 선수의 눈에 비춰진 베이징 올림픽과 우리 대표팀, 그리고 그들의 금메달 도전기를 통해 보다 생생한 올림픽 경험의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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