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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버드 실릭 메이저리그 커미셔너가 아직도 착점을 못하고 있습니다.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배리 본즈의 756호 홈런 신기록 경기 참석 여부에 대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17일 구단주 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도 “정말 본즈가 신기록에 다가섰느냐?”고 실없이 농담하며 “오늘도 달리 말할 게 없다. 적당한 시기가 되면 결정하겠다”는 종전 입장만 되풀이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실릭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재고 또 재고 있습니다. 첫째는 기록 보유자인 행크 애런과의 친분입니다. 그는 “커미셔너로서 직무를 수행할 때 개인 감정을 이입해선 안 된다는 것을 잘 안다 . 하지만 애런은 내 가장 친한 친구다. 그것을 부인할 순 없다”고 했습니다. 애런은 실릭이 구단주로 있던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1976년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두 번째는 여론입니다. 스테로이드 복용을 커미셔너 스스로 용인하는 꼴이 돼 더욱 거센 비난에 직면할 지도 모른다는 것 입니다. 약물 문제가 재임 중 불거져 나온 사건이어서 스스로 꼬인 매듭을 풀어야 하는 그로선 당연히 느끼는 부담이요 걱정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들이 메이저리그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는 현장에 수장이 빗겨 나 있어도 되는 알리바이로 성립할 수 있는 것일까요?
쿤은 출전을 강력하게 명령했습니다. 애런이 개막전에서 714호를 날리자 브레이브스는 이후 두 경기를 결장시켰습니다. 결국 애런은 애틀랜타로 돌아와 LA 다저스전서 715호 아치를 수놓았습니다.
하지만 5만3775명의 사상 최다 홈 관중이 운집한 구장에 쿤은 부재 중이었습니다. 714호 타이 홈런을 날렸을 때 신시내티의 리버프런트 스타디움에 있었던 쿤은 후일 이렇게 밝혔습니다. “월요일(4월8일)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날이었고…(중략). 무엇보다 신시내티서 브레이브스가 하는 짓거리를 보고는 그런 출장을 가고 싶은 열정이 생기지를 않았다.” (그의 책 ‘하드볼(Hardball)’)
실릭 자신이 가장 위대한 홈런 타자라고 평가하는 애런과의 친분을 앞세워 본즈의 홈런 신기록 현장에 가지 않는다면 핑계에 불과한 개인 용무와 감정 때문에 애런에게 가지 않은 쿤과 하나도 다를 게 없습니다. 애런이 하루에만도 수천 통의 살해 협박 편지를 받았던 때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정작 실릭을 장고의 늪에 빠지게 한 결정적 이유라고 할 수 있는 여론에 대한 부담감도 지나친 ‘몸사리기’이고 ‘눈치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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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USA투데이가 갤럽과 함께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야구 팬들의 54%가 실릭이 본즈의 현장에 참석해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493명의 빅리거 중 74%는 커미셔너의 책임이라고도 했습니다. 심지어 본즈를 보러 가느니 차라리 플로리다에서 골프나 치겠다고 했던 애런조차도 “나는 답을 모른다. 실릭에겐 어쩔 수 없는(No-Win) 상황이다”고까지 말했습니 다.
그러나 실릭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모든 사람의 눈치나 살피는 정치인의 약삭 빠른 몸짓이 아닙니다. 재삼 강조하지만 설령 쓰레기통 속으로 처박아야 할 기록일지라도 ‘현실은 현실이고 엄연한 역사’라는 인식입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외길이라면 장고(長考)의 끝은 악수(惡手)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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