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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임성일 객원기자] 왕이라 불리던 사나이, 티에리 앙리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로 떠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스날의 위기를 점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왕이란, 그저 ‘특별히 잘하는 선수’에게 부여할 수 있는 수식이 아닌 까닭이다.
수년간 자리를 지키던 절대 통치자(앙리)가 갑작스럽게 떠난 사회(아스날)의 불안은 일정 부분 불가피한 수순으로 받아 들여졌다. 예상보다 큰 추락을 운운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아스날은 하늘로 향하고 있다.
구단과의 갈등 등 몇 가지 이유가 드러났으나 앙리가 아스날을 떠난 배경 속에는 우승에 대한 갈증이 적잖은 부분을 차지한다. 아르센 웽거 감독 역시 “앙리가 현재 아스날의 전력으로는 프리미어리그 정상 등극이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확실히 첼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그리고 올 시즌의 리버풀까지, 라이벌 클럽들은 분주한 살찌우기로 상대적으로 미미했던 아스날과의 몸집 차이가 제법 나는 형편이다. 물론 20대 초반의 정상급 플레이어들이 즐비한 아스날의 스쿼드는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적어도 당장, 그들이 팀을 우승으로 견인할 만큼 절정의 기량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앙리가 고개를 돌렸던 것도 이 때문이고 지난 시즌까지 아스날은 확실히 설익은 부분이 있었다.
일단 첫 단추를 잘 꿴 영향이 크다. 풀럼과의 리그 개막전에서 아스날은 1분 만에 골키퍼 레흐만의 어이없는 실수로 선제골을 내줬다. 다행히 이후에는 일방적이다 싶을 만큼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하지만 시종일관 몰아붙이면서도 도무지 상대 골문을 열지 못했으니 표정이 어두웠던 웽거 감독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만약 종료 5분을 남겨두고 반 페르시에의 PK동점골, 그리고 인저리 타임 흘렙의 극적인 역전골이 없었다면 아스날의 출발은 자못 심각할 뻔했다. 단순히 승패를 떠나 초장부터 ‘앙리 빈자리’를 운운하는 안팎의 잡음에 시달릴 수 있었다. 요컨대 아스날 특유의 톱니바퀴처럼 빠르고 정확한 전개는 여전하나 마무리가 약해졌다는 ‘맹목적인’ 비난을 피했다는 측면에서 더욱 값진 승리였다.
덩달아 수비력까지 견고(4실점)함을 자랑하고 있으니 ‘잘되는 집’의 전형을 보여주는 아스날이다. 결국 비중은 컸으나 결코 앙리 하나의 팀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으며 비범한 지도자 웽거 감독의 능력도 새삼 주가를 높이고 있다. 여전히 어리나, 이제는 각자가 주축이라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하는 젊은 포병대원들의 프로다움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만사 새옹지마라더니, 우려를 뒤로하고 새로운 길조들과 함께 새로운 행복을 쌓고 있는 아스날이다. <월간 베스트 일레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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