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어깨를 웅크린 채 죽치고 앉아 다음 편의 영사기가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동시상영 2편은 무엇인가요? 역시 '뻔할 뻔' 스토리입니다.
조지 미첼의 보고서가 발표되자 버드 실릭 커미셔너는 잔뜩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고 보낸 콜”이라고 했으나 “케이스 바이 케이스 징계”라는 본말전도의 해법을 내놓았습니다. 수백만 달러를 써가며 21개월이란 시간을 들여 메이저리그를 벌집 쑤셔 놓듯 하면서 왜 굿판을 벌인 것인지 어이없기만 합니다.
하긴 이 모든 게 푸닥거리에 불과하다는 것은 일찌감치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이미 실릭의 동업자들은 조사의 와중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약쟁이’ 선수들에게 천만 달러의 거액을 안겨줬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입니다.
자, 이제 동시상영 두 편은 모두 끝나고 녹슨 땡땡이 종도 울렸습니다. 남은 일은 무엇인가요. 그렇지요. 가장 중요한 흥행입니다.
그 누구보다 돈이라면 통달한 구단주들이 수천만 달러를 약쟁이 선수들까지 포함해 척척 안겨주는 게 그 자신감의 발로입니다. LA 타임스의 명예의 전당 헌액 기자 로스 뉴한은 “야구의 사기꾼들은 영원히 번영할 것”이라고 한탄했습니다.
팬들도 너그러워(?)졌습니다. USA투데이와 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절반이 조금 넘는 60%의 팬들이 약쟁이 선수들에게 징계를 내려야 한다고 했고 그 중 43%는 출장정지, 16%는 벌금이었습니다.
1994년 샐러리캡 도입 여부를 놓고 벌인 선수 노조 파업으로 하락세(당시 총수입 44억 달러)를 면치 못했던 메이저리그의 맷집은 이제 어떠한 스캔들의 후폭풍도 견뎌낼 정도로 탄탄해진 것입니다.
공교로운 사실은 배리 본즈의 기여 아닌 기여(?)입니다. 바로 ‘본즈 학습 효과’입니다.
‘약물하면 본즈’라고 할 정도로 흠씬 두들겨 맞았던 그가 아이러니하게도 메이저리그의 맷집을 키우는데 톡톡히 일조한 셈입니다.
한편 본즈는 이번 약물조사에서 굳이 따진다면 일득일실을 했습니다. 얻은 게 있다면 다른 선수들의 약물 복용도 드러난 만큼 메이저리그 차원에서 유독 그에게만 과중한 징계를 내리기는 힘들 것이라는 점입니다. 최근 오클랜드 빌리 빈 단장이 영입 포기를 공식 선언해 팀을 찾는데 어려운 점은 남아 있지만 법적인 걸림돌도 해결된 만큼 내년 시즌 뛰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금지약물인줄 모르고 먹었다”는 그의 거짓말은 빼도 박도 못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