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에게 묻는다 4]현대 전준호의 '날쌘돌이의 세계'...도루,번트 편

  • 등록 2007-06-20 오전 11:16:38

    수정 2007-06-20 오전 11:24:59

▲ 전준호 [사진=현대유니콘스]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전준호는 도루계의 '양준혁'이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37.KIA)에 가려 2인자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오랜 시간 꾸준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냈고 결국 19일 현재 527개의 도루로 한국에서 가장 많은 도루를 성공시킨 선수로 남아 있다. 500도루를 돌파한 선수는 현재 그가 유일하다.

그는 '번트의 달인'으로도 유명하다. 몇해 전 한 투수가 "기습 번트는 비겁하다"고 한 말이 화제가 되자 전준호가 나서서 발끈한 적이 있다. 그때 아무도 그의 반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가 그 분야 '최고'이기 때문이었으리라.

▲눈으로 하는 도루

전준호는 도루에 대해 묻자 대뜸 ‘눈’ 이야기를 꺼냈다. 도루는 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하는 것이라고 여러차례 반복해서 말했다. 도루할 때 눈은 언제 어떻게 쓰는 걸까.

“투수는 좀 심하게 표현하면 굉장히 단순하다. 예를 들어 주자가 2루에 있을 때 투수는 주자를 꼭 쳐다본다. 그러나 눈만 보고 있는 거지 온통 생각과 마음은 타자에 쏠려 있다. 또 어떤 투수든 습관이 다 있다. 홈으로 던질때와 견제할 때 차이가 나게 돼 있다. 무릎,발,골반,어깨,머리 등에서 차이를 읽을 수 있다. 심지어 얼굴에서 차이가 나는 투수도 있다. 이 중 한두가지는 꼭 나오게 돼 있다. 눈으로 그 습관을 잘 읽어낼 수 있다면 도루 성공률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여기에 스피드,슬라이딩이 조화를 이루면 금상첨화다.”

각 팀별로 1년에 1군에만 보통 20명 이상의 투수가 등장한다. 적게 잡아도 타자가 상대해야 할 투수가 140명이 넘는다. 이름 외우기도 쉽지 않은 선수들의,그것도 미세한 움직임의 차이에서 버릇을 읽어내 기억한다고?

방법을 물어봤다. 혹시 수험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고. 그러나 그의 답은 실망(?)스러웠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며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기록이 다 있다. 처음에는 메모를 해놓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나 스스로 정리했다. 이런 작업이 매년 반복되다 보니 이젠 머릿속에 다 남아 있다. 신인 선수나 외국인 선수 등 처음 보는 선수들은 다시 자료를 정리한다. 덕아웃에서 보고 전력분석팀의 비디오를 통해서도 찾아내야 한다. 여기엔 중요한 것이 있다. 시즌이 시작되면 반드시 변한 것이 있나 확인하는 작업이다. 머릿속에 있다고 안심하다가 투수가 자신의 습관을 고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그대로 나오지만 그래도 꼭 확인해야 한다.”

그렇다면 기억에 남는 버릇이 있을까. 현역 선수들의 습관은 아직 그의 재산일테니 은퇴한 선수 중 한명만 얘기해달라고 했다. 전준호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한화 한용덕 투수코치님은 현역시절 모자 창에서 습관이 나왔다. 모자 창이 밑에서 올라오면 홈으로 던지는 것이었다. 왼손 투수는 눈이 주자와 마주치면 홈으로 던진다. 아닐때는 견제다. 신기할 정도로 하나같이 그렇다”고 말했다.

▲5발 반과 6발

메이저리그 중계를 듣다보면 “점프”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점프는 농구 단어처럼 여겨지지만 야구에서도 빼 놓을 수 없는 중요 요소다. 우리가 흔히 “스타트”로 표현하는 도루의 출발을 의미한다. 전준호는 이 “점프”에도 치밀한 계산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본적인 도루 리드는 5발 반이다. 왼손 투수일 경우 6발을 나간다. 5발 반을 나가면 벤트 레그 슬라이딩(발부터 들어가는 슬라이딩)은 12발,헤드 퍼스트는 11발에 2루까지 가야 한다. 이건 공식이다. 자신이 뛰는 것을 비디오로 봐야 한다. 혹 걸음수가 더 나오면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다. 리드와 보폭이 일치되면 당연히 맞아떨어져야 한다. 기본적으로 도루 하는 선수라면 자기 리드로 몇발 뛰어 도착할 수 있는지 체크해야 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점프“다. 리드 잘 해놓고도 걸음수가 많은 건 뛰어나가는 순간의 타이밍과 보폭이 나빴다는 뜻이 된다.”

여기서 잠깐. 좌완 투수가 2루 도루하기 더 어렵다는 것이 보통의 상식이다. 빤히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좌완 투수가 있을 때 리드 폭이 더 크다고?

“왼손 투수가 오른손에 비해 견제를 했을때 스피드가 떨어진다. 오른손이 더 빠르다. 왼손 투수는 주자를 정면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구조상 빠른 견제가 어렵다. 순간적으로 왼발을 빼고 강하게 던질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주자 입장에선 그 점만 주의하면 전체적으로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

▲내가 여전히 잘 뛰는 이유
 
전준호는 2004년 53개의 도루로 이 부문 1위에 올랐다. 성공 횟수도 많았지만 확률은 더 좋았다. 모두 60번 시도해 단 7번만 실패했다. 88.3%는 역대 최고 성공률이다. 이때 그의 나이 35세 되던 해에 9년만에 도루왕 복귀였다.

“분명히 20대 때보다 30대 중반이 넘어서며 스피드나 순발력은 떨어졌다. 30m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20대때에 비해 0.5초 정도 느려졌다. 0.5초면 30m 달리기에서 반보 정도인데 베이스러닝에선 큰 차이다. 흔히 베이스러닝을 인치(1인치는 2.54cm) 싸움이라고 한다. 1인치만 늦어도 살 수 없는데 반보면 엄청나게 늦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가장 좋은 성공률로 많은 도루를 한 것은 눈의 승리라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다는 아니었다. 반보만 느려질 수 있도록 하는 숨은 땀이 뒷받침 됐다. 전준호는 “순발력과 스피드는 가장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이다. 비 시즌부터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스트레칭을 많이 하고 순발력에 도움이 되는 훈련량을 늘린다. 웨이트 트레이닝 무게를 높이기 보다는 가벼운 걸 많이 드는 것이 좋다. 또 줄넘기를 많이 한다. 줄넘기는 탄력을 높이는데 최고다. 매우 좋다. 30대가 넘어 순발력과 스피드를 끌어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유지한다는 생각 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도록 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최소한 버틸 수 있다. 시즌 때는 단거리를 많이 뛴다”고 비법 아닌 비법을 털어놓았다.

▲도루는 팀 플레이다

최근 도루 수가 많이 줄어들고 있다. 한때 60개 이상은 해야 차지할 수 있었던 도루왕 타이틀이 40개대까지 내려왔다. 젊은 날쌘돌이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그전에 비해 성공률이나 횟수 모두 적어진 것이 현실이다. 전준호가 생각하는 ‘요즘 젊은이’들은 어떤 느낌 일까.

전준호는 우선 칭찬으로 시작했다. “박용택이나 이종욱,정근우 등 다 좋다. 재주가 있고 노력도 많이 한다. 눈들도 다 좋다.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쉬움도 분명 있는 듯 보였다. 전준호는 “선수들이 열정은 조금 떨어진 것 같다. 도루는 정말 어려운 공격 수단이다. 부상 위험도 있고 체력적 부담도 된다. 또 누상에만 나가면 쏟아지는 견제에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도루는 팀의 공격에 큰 보탬이 되는 수단이다. 투수가 아무리 많은 변화구를 던질 수 있다 해도 빠른 주자가 나가면 바깥쪽 빠른 계열(직구,슬라이더)로 던지는 가짓수가 적어지게 된다”고 힘 주어 말했다.

그리고는 정말 하고픈 얘기를 꺼냈다. “도루는 팀 플레이다. 개인 욕심이 앞서면 안된다. 뛰어야 될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을 구별할 줄 알아야한다. 타이틀 욕심이 난다고 아무 때나 뛰어선 절대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없다. 반대의 경우도 중요하다. 힘들고 겁이 나도 팀을 위해 뛰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럴땐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번트는 공식이다

‘전준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번트다. 야구 전문가들은 그의 번트를 “예술”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최근 스몰볼이 대세를 이룬다고는 하지만 정작 번트나 작전이 걸렸을 때 성공률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번트 실패하는 선수를 보는 것처럼 짜증나는 것도 없다. 어쩌면 ‘번트가 많은 경기’가 싫은 것이 아니라 ‘번트 실패가 많은 경기’를 보는 것이 힘겨운 것인지도 모른다. 전준호는 “번트 실패는 노력 부족”이라고 잘라 말했다.

“번트는 공식이 있다. 번트처럼 기본이 중요한 것이 없다. 기술은 그 다음이다. 공식을 무시하고 요행을 바라는 번트는 실패확률이 많다. 번트야 말로 가장 훈련이 많이 필요한 기술이다. 또 훈련만 하면 누구나 잘 해낼 수 있는 기술이기도 하다. 나는 신인 시절부터 하루에 300~500개씩 번트 훈련을 했다. 던져줄 사람이 없어 기계 볼로 했다. 기계 볼과 살아있는 볼은 차이가 난다. 그러나 워낙 많이 하다보니 살아 있는 공에도 적응이 됐다. 운동 전과 하면서, 또 끝나고도 계속 치고 또 쳤다. 그렇게 5년정도 하고 나니 번트에 자신을 가질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번트에 대한 짧은 질문 두가지를 건넸다.

-번트의 공식이 뭐죠.
“번트는 배트하고 눈이 가까워야 한다. 왼손타자는 왼손으로,오른손 타자는 오른손으로 조정해야 한다. 상체는 자기가 보내고 싶은 방향으로 가야 한다. 2루 쪽으로 대고 싶으면 가슴이 그 쪽으로 가 있어야 한다. 하체가 먼저 움직이고 상체가 따라가면서 각도를 만드는 것이다. 손만 가지고 하려니까 안 되는 거다. 손으로만 방향을 잡으면 빗맞기 십상이다. 말은 쉽게 하지만 살아 있는 공을 그렇게 만드는 건 정말 어렵다.”

-번트대기 어려운 공은 없나요.
“몸쪽 직구가 제일 어렵다. 그러나 번트는 기본적으로 직구를 노려야 한다. 꼭 피해야 할 공이 있다. 커브다. 커브는 투수가 손에서 떠나면서 포수까지 가는데 시간적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 시간동안 투수가 수비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돼 성공률이 떨어진다. 나머지 공은 다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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