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좌절 눈물 그리고 도전으로 쏘아올린 100홈런'

  • 등록 2007-07-01 오후 2:06:51

    수정 2007-07-01 오후 2:40:53

▲ 이승엽 [뉴시스]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국민 타자' 이승엽(31.요미우리)이 1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원정 경기 첫 타석에서 드디어 일본 진출 이후 100번째 홈런을 때려냈다. 2004년 4월4일 소프트뱅크전서 첫 홈런을 쏘아올린지 4년, 432 경기(1일 현재)만에 만들어낸 쾌거다.

우즈(주니치)가 보유하고 있는 최단경기 100홈런(321경기)에는 아쉽게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좌절과 눈물,그리고 도전을 통해 얻은 결과이기에 감동은 그 이상이다.

▲방심 그리고 좌절
이승엽은 2004년 지바 롯데에 입단,호기롭게 일본 땅을 밟았다. 자신의 최고 절정기를 맞았다는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기 때문이다. 2003년 아시아 최다인 56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또 한번 성장곡선을 그리던 시절이었기에 일본 무대서의 성공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무대는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날선 제구력과 묵직한 볼끝을 앞세운 일본 투수들은 이승엽의 약점을 철저하게 공략해 들어왔다. 준비가 부족했던 이승엽에게는 너무도 높은 산이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이런 저런 조언이 쏟아졌다. 이승엽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져 갔고 타격 밸런스는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생애 첫 2군행의 아픔도 겪었다. 결국 14개의 홈런과 50개의 타점을 올리는데 그치며 첫 해를 마감하게 됐다.

이승엽이 시간이 흐른 뒤 사석에서 “만약 시계를 돌려 다시 출발선에 서게 되면 전력분석부터 철저히 하겠다. 물론 첫해에도 비디오 분석을 한다고 했지만 마음 자세부터 다시 고쳐 먹고 시작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절반의 성공
이승엽은 다시 이를 악물었다. 2004시즌 뒤 외부와 연락도 끊은 채 훈련에만 매진했다. 2005시즌을 앞두고는 특급 도우미도 합류했다. 김성근 현 SK감독이 전담 코치로 영입됐다.

독기와 근성이 만나 끝없는 훈련이 이어졌다. 당시 이승엽의 통역을 맡았던 이동훈씨는 “경기 후 1시까지 실내 연습장에서 타격 훈련이 매일같이 계속됐다. 공이 배트에 맞아나가는 소리만 가득했다.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감히 입을 열 수도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실이 맺어지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승엽은 개막전을 2군에서 맞았지만 승격 후 제 자리를 찾았다. 특히 처음 도입된 교류전에서는 12개의 홈런을 몰아치며 초대 교류전 홈런왕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이승엽의 고난이 완전히 막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플래툰 시스템’의 벽이 그를 가로막았다. 바비 밸런타인 롯데 감독은 좌투수를 상대로는 이승엽에게 제대로 된 기회를 주지 않았다. 간혹 좌투수를 상대할 기회가 있었지만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다.

이승엽은 그해 30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외국인 타자로서의 합격증을 받았다. 하지만 2006년에 대한 기대치는 높지 못했다. 여전히 반쪽 기용이 유력했기 때문이다. 이승엽은 다시 도전을 택한다.

▲다걸기 성공
이승엽은 2006년 1월 전격적인 요미우리행을 선언한다. 지바 롯데와 재계약이 유력했지만 막판 이를 뒤집었다. 최대 5,000만엔(약 5억원) 가량의 금전적 손해도 감수하고 도장을 찍었다.

돈만 줄어든 것이 아니었다. 요미우리는 더욱 앞길을 예측하기 힘든 생존의 정글이었다. 조 딜런과의 치열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성적 지상주의의 요미우리 팀 분위기에선 경쟁해 볼 시간도 넉넉히 주어지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러나 이승엽은 과감히 요미우리의 문을 두드렸다. 뻔히 정해진 한계보다는 거칠지만 공정한 경쟁이 유리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통해 세계적인 거포임을 확인시킨 이승엽은 팀 복귀 후 달라진 위상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라 신임 요미우리 감독은 ‘제 70대 요미우리 4번타자’라는 명예를 이승엽에게 안겨줬다. 2년간 지독한 불신의 벽에 부딪혀 있던 이승엽에게 하라 감독의 믿음은 ‘금장 날개’가 아닐 수 없었다. 이승엽은 41개의 홈런과 108타점이란 빼어난 성적표로 하라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이승엽은 2007년 다시 한번 고비를 맞았다. 어깨,허리,손가락 부상이 겹치며 좀처럼 지난해의 폭발력을 되찾지 못했다. 최근 붙박이 4번자리까지 아베에게 내줘야 했다.

그러나 이승엽은 이전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고 있다. 3년간의 강한 담금질이 그를 ‘나약한 천재’가 아닌 ‘우직한 기둥’으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100홈런은 그에게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돼 줄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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