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이번 제 연기 점수요? 51점요."
소지섭(32)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51'이라는 숫자, 처음 듣는 게 아니다. 그를 톱스타로 만들어준 KBS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이하 '미사'·2004)를 찍으면서 "내 연기는 51점"이라고 밝힌 적 있다. '연기에 대한 불만족보다는 만족이 조금 커졌다'는 이유에서였다. 공익근무를 마친 뒤 4년 만에 돌아온 그의 자기평가가 그대로 51점이라니.
8일 서울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반환점을 돌아 이제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한껏 낮추는 듯 하지만 그에게 있어 '51'이라는 숫자는 어쩌면 자기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인지도 모른다.
11일 개봉할 영화 '영화는 영화다'는 그의 자신감의 원천이다. 영화에서 배우를 꿈꾸는 깡패인 '이강패'를 맡아 깡패 못지않게 주먹을 휘두르는 스타 '장수타'(강지환)와 영화 한 편을 찍는다. 이 노골적인 작명법에서 오는 페이소스를 뛰어넘어 둘은 마치 하나가 된 듯 서로의 숨겨진 모습을 발견해 간다. 거칠기만 할 것 같은 이 수컷 드라마에서 그는 냉혈하면서도 고독하고, 남성미 물씬 풍기면서도 여린 듯 모성애를 한껏 자극하며 관객의 시선을 장악한다. 제작비 15억원 영화라 개런티도 적었지만, 그걸 모두 투자해 '제작자'로도 이름을 올렸다. 허무했던 데뷔작 '도둑맞곤 못살아'(2002) 이후 첫 주연 작품. 관객과 평단은 그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재촬영 여러 번 했는데 여전히 멋있게 나왔냐"며 심각한 듯 이마에 주름을 세웠지만, 좋아하는 표정이 더 많이 보인다.
지금은 톱스타의 여유가 묻어나지만 그에겐 '만년 2인자'의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1995년 청바지 브랜드 스톰 모델로 송승헌과 함께 발탁됐지만, 큰 인기를 끈 송승헌과 계속 비교되기만 했다. 데뷔 초엔 작은 눈 때문에, 쌍꺼풀 수술을 하자고 우기는 매니저와 자주 싸우기도 했다. 그에게서 '배우'를 발견할 수 있었던 '발리에서 생긴 일'(2004)이 끝나고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조인성에게 밀리면서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나 이렇게 (일일극에 가끔 출연하면서 살아가는) '생활 연기자'로 인생 마무리하는구나…."
'연기만 하다 죽고 싶다'는 배우도 있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연기가 정말 좋고 이제 재미를 찾기 시작했지만, 연기를 오래 할 생각도 없어요. 결혼하면 다른 길을 찾아볼지도 모르겠어요."
그는 요즘 자신의 이름이 등장한 기사며 각종 블로그를 빠짐없이 읽는다. "몇몇 블로그에서 '꽃미남들'이라며 사진을 올렸던데, '쟤(소지섭)는 제외'란 댓글이 많더라고요. 그런 댓글 정말 좋아요. 제가 무슨 꽃미남이에요. 주변에선 제가 때를 잘 만났다고 해요. 워낙 밋밋해 10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인기 못 얻을 얼굴이라나." 그래서인지 '리틀 소지섭'이라고 불리는 유승호군에게 정말 미안하다. "게다가 전 '제2의' 같은 소리 정말 싫어하거든요. 얼마 전 뮤직 비디오 촬영장에서 승호를 만나게 돼 '미안하다'고 했어요."
사실 그는 '단답형' 배우로 유명하다. 그가 이렇게 말이 많아진 건, 잘 나온 영화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얼마나 바라고 있을까. "이번 영화요? 100만 명만 넘었으면 좋겠어요. 어휴. 진짜 친한 형들(송승헌, 권상우) 영화 찍는 거 봤는데요. 100만 넘는 거 정말 힘든 일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