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n스타①]유인촌vs이창동...발로 뛰어온 현장형 장관, 색깔이 다르다

  • 등록 2008-03-07 오후 7:44:24

    수정 2008-03-07 오후 7:45:43

▲ 유인촌 문화부장관(사진=문화부 홈페이지)과 이창동 전 문화부장관

[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지난 2월27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관광체육부(이하 문화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30여 년간 배우로 명성이 높았던 유인촌(57) 내정자는 국회의원들의 날선 질문에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쟁점이 되었던 것은 유인촌 내정자의 140억원 대의 재산 형성 과정. 의원들은 저마다 준비한 자료로 유 내정자를 압박했다. 유 내정자는 나름대로 해명을 하거나 혹은 사과를 하고 의원들의 말씀을 새겨듣겠다며 몸을 낮췄다. 배우와 탤런트가 아닌 한 나라의 문화정책을 좌우하는 장관으로서 유인촌의 첫 걸음은 쉽지 않아 보였다.

이명박 정부의 초대 내각 인사들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인지도가 높고 화제가 된 장관은 단연 유인촌 제44대 문화부 장관이다. 1974년 MBC 공채 탤런트 6기로 데뷔해 국민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양촌리 김 회장(최불암 분)의 둘째 아들로 오랫동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KBS ‘역사스페셜’ 진행자로도 시청자들과 만났으며 모교인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교수, 극단 대표, 서울문화재단 초대 대표이사를 거쳐 문화부 장관에 이르기까지 유 장관의 행보는 늘 관심의 대상이 됐다.

◇ 장관이라는 공통분모 유인촌과 이창동

그러나 시계를 5년 전, 노무현 정부의 출범 초기로 되돌려보면 유 장관 못지않게 화제가 된 각료가 있었다. 바로 제40대 문화부장관을 역임한 이창동(54) 감독이다.

1997년 ‘초록물고기’로 데뷔한 이창동 감독은 2002년 세 번째 장편 ‘오아시스’로 세계 3대 국제영화제인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부상했다.
 
영화감독으로 명성을 쌓은 이창동 감독은 2002년 16대 대선 당시 문성근 명계남 등 동료 영화인들과 함께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적극 지지해 화제가 됐다. 그리고 대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후보는 이창동 감독을 문화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했다. 영화감독 출신 첫 각료의 탄생이었다.

유인촌 장관과 이창동 감독은 각각 방송과 영화 등 대중문화계 현장에서 일가를 이룬 뒤에 문화부장관에 임명되었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새 정부 출범 초기 첫 내각에서 장관으로 일하게 된 점도 같다. 문화부 장관이 된 배경도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도왔다는 측면에서도 일치한다.

유 장관과 이 감독 공히 자신들의 대중적 인지도를 이용해 선거과정에서 TV 광고와 후보자 지지연설에 참여한 것도 다르지 않은 부분이다.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두 후보 역시 상대 야당의 집중적인 공세로 곤경에 쳐했던 부분도 비슷하다.

무엇보다 이들은 본인들 스스로 배우와 영화감독이란 본분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천직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중문화예술인’이란 본질적인 DNA를 공유하고 있다. 그 점에서 유 장관과 이 감독은 정치권의 우려와 논란은 별개로 대중문화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내각에 입성했다.

◇ 배우 유인촌에서 장관 타이틀 달기까지

유 장관은 인사청문회 당시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배우’라고 답했다. 탤런트로 유명해졌지만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고 강단에 교수로서 후배들에게 연극을 강의하기도 했다. 본인 소유의 극장이 있고 현재도 극단의 대표로 있다.
▲ 지난 2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부장관 인사청문회(사진=YTN화면 캡쳐(


유 장관은 ‘전원일기’ ‘야망의 세월’ ‘역사 스페셜 ’등 TV 드라마와 교양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본인은 ‘어느 말의 이야기-홀로또메르’, ‘철인 붓다’, ‘문제적 인간 연산’ 등 연극작품에 대한 애정이 더 각별했다. 지난 2001년 11월부터 2002년 1월 말까지 문화일보에 연재한 ‘유인촌의 모놀로그’라는 기명 칼럼에서 배우라는 지칭을 가장 앞서 내세운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유 장관은 단순히 연극배우 혹은 탤런트라는 자리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의 약력에는 1990년 한국방송연예인노동조합 위원장이라는 직함도 있고 보건복지부와 환경단체 등에서 선정하는 각종 홍보대사로도 이름을 아끼지 않았다. ‘눈 건강 홍보대사’ ‘산의 해 홍보대사’ ‘암 예방 홍보대사’, ‘환경부 홍보대사’ 등등 셀 수 없다.

이런 유 장관의 경력은 그만큼 유 장관의 이미지가 국민들에게 긍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점이다. 그가 90년대 중반 이후 TV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6개월 단발 CF에서 1억5천만원 내지 2억원 정도의 모델료를 받을 수 있었던 사실이 이를 방증 한다.

그의 이런 대중적 이미지는 정치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다. 국민들에 대한 호소력이 자신들보다 크기 때문이다. 유 장관은 2005년 12월 서울문화재단 대표 재임 시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며 “1980년대부터 국회의원 영입을 제안 받았는데 뜻이 있다면 그때 갔을 것이다”고 밝힌 것은 그만큼 정치권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는 자신의 처지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유 장관은 결국 공모절차를 무시하면서까지 자신을 서울문화재단 초대 대표이사로 임명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과 정치적인 길을 같이 가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전원일기’ 출연과 ‘야망의 세월’ 출연으로 맺어졌던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은 이때를 기점으로 정치적 동반자의 관계로 발전했고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를 음으로 양으로 도왔다. 이처럼 긴밀한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가 없었더라면 유 장관은 국무회의 명단에 오를 일이 없었을 것이다.

◇ 이창동, 감독에서 장관으로 장관에서 다시 감독으로

유인촌 장관에게 이창동 감독은 비교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룰 모델로 남을 수 있다. 이 감독은 장관 취임 당시 “공익근무를 하러 가는 심정이다”는 말로 공직에 임하는 소감을 밝혔다.
 
▲ 이창동 감독(사진=김정욱 기자)


2003년 2월27일부터 2004년 6월 30일까지 제40대 문화부 장관으로 나라의 녹을 먹은 이창동 감독은 장관 퇴임과 동시에 다시 현역 감독으로 돌아와 2007년 전도연 송강호 주연의 ‘밀양’으로 칸 국제영화제 본선에 진출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건제를 과시했다. 장관 임기를 마치면 다시 배우로 돌아가겠다고 말한 유인촌 장관에게는 이창동 감독이 또 다른 배우 출신이었던 김명곤 제42대 전 문화부 장관과 함께 하나의 본보기다.

이창동 감독은 장관 이전에 감독으로서의 이력도 남달랐던 인물이다. 경북대학교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던 교사 이창동은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전리’가 당선되어 소설가로 데뷔했다. 이후 ‘운명에 관하여’와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단편으로 각각 이상 문학상 우수상과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서도 촉망을 받았다.

그러나 이창동 감독은 1993년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이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각본을 썼고 문성근 명계남 여균동 등 영화계 인사들과 함께 창립한 이스트필름의 ‘초록물고기’를 통해 감독으로 변신했다. 이때부터 정치권의 진보세력과 교감을 나눈 이창동 감독은 감독으로서도 입지를 더욱 탄탄히 했다.

2002년 8월 베니스 영화제에서 ‘오아시스’의 감독상 수상 소식은 영화 관객이 아닌 일반 국민들에게도 이창동의 이름을 새롭게 각인시켰다. 이런 대중성으로 인해 이창동 감독은 2002년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선거운동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고 결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노무현 후보는 이창동 감독을 문화부 장관에 임명했다. 당시 강금실 법무부장관과 함께 참여정부 초대 내각 최대의 깜짝 인사였다.

◇ 유인촌과 이창동의 비교에 관심 가는 까닭은

유인촌 장관이 숱한 전임 문화부 장관들 가운데 유독 이 감독과 비교가 되는 까닭은 새 정권의 초대 내각으로 입각 했다는 점이 크다. 새 출발하는 정권에게 초대 내각이 가지는 상징성은 정권 중에 내각 교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 초대 문화부 장관이었었던 이창동 감독과의 비교는 그래서 흥미롭고 관심의 대상이 된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는 전임 정부인 노무현 정부의 정권교체를 이뤄내고 탄생한 정부라 더 그렇다.

유 장관과 이 감독은 직업 정치인이 아닌 배우와 감독으로서 본업에 충실하다가 졸지에(?)장관으로 발탁되었다는 점에서 몸담고 있는 정권의 지향점은 다를지라도 서로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것으로 보인다. 유 장관은 인선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재산문제와 언론과의 인터뷰 중 발언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이 감독은 2003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의원들과 날선 정치적 공방을 주고받았다가 임명 두 달 만에 해임건의안까지 논의될 정도로 정치공방의 타깃이 됐다.

하지만 2004년 6월 스크린쿼터문제로 장관직에서 사임하기까지 이창동 감독은 참여정부 초대 문화부장관으로서 문화예술정책의 구체적인 플랜을 정리했다는 평가 속에 직무에 충실했다. 물론 참여정부가 추진한 언론개혁의 총대를 메고 언론과의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문화부 장관으로서 조직 장악과 업무추진은 탁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4년 연말 참여정부의 혁신평가에서 문화부가 유일하게 통과한 것은 감독 이창동이 아닌 장관 이창동으로서의 노력을 인정받은 결과다.

◇ 유인촌과 이창동, 배우와 감독 그리고 장관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 된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인촌 장관의 업무능력을 평가하기는 이르다. 다만 유 장관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을 이끌지 점검해 볼 수는 있다.
 
유 장관은 지난 29일 문화부 장관 취임사에서 전통문화에 대한 사랑을 첫 손에 꼽은 뒤 경제적인 논리를 적용하지 않고 순수예술인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장을 펼치겠다고 강조했다. 유 장관은 인사청문회 당시에도 순수예술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며 국립극장을 예로 들어 “수익성을 생각하지 않고 공연에 전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밝힌바 있다.

이런 유 장관의 성향으로 봤을 때 이창동 감독과는 달리 임기 초반 정치권의 소용돌이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것으로 보인다. 이 감독은 노무현 정부 초기 문화부 홍보업무 운영방안 등으로 언론과 마찰을 빚으며 이후 화물연대의 파업과 교육행정 정보시스템 문제 등등 연이어 터진 사회적 이슈의 핵심에 섰던 전력이 있다. 이는 국무의원으로서 불가피 한 점도 있지만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주저하지 않았던 이창동 감독의 평소 소신 탓도 컸다.

그러나 유 장관은 이창동 감독에 비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는 스타일로 알려졌다. 그간 언론과의 인터뷰를 봐도 유 장관은 사회적 쟁점에 대해 거침없는 소신을 밝히던 이 감독과 달리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는 수준에서 무마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이사로 있는 환경재단이 대운하를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사청문회 당시 대운하문제에 대해 자신의 정확한 소신을 밝히지 않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또한 유 장관이 평소 지론과 배치되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유 장관은 경제적 논리에 순수예술이 희생당하면 안 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효율성의 논리로 작은 정부를 추진하고 있다.
 
이창동 감독이 스크린쿼터철폐반대운동을 하다가 정작 주무장관이 되었을 때 입장을 번복해 영화인들의 실망을 산 것처럼 유 장관에게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예술인이 아닌 정치인으로서 선택을 해야 할 때 유장관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사실 유인촌과 이창동의 비교이전에 주목해야 할 것은 감독 이창동과 배우 유인촌이 새로운 정부의 초대 문화부장관으로 임명될 만큼 대중문화예술분야의 지위가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문화부는 그 기능상 문화예술뿐만 아니라 체육과 관광뿐만 아니라 정부의 대국민 홍보역시 총괄하는 부처다.

과거에는 정권의 실세들이 임명될 만큼 권력구조에서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부처에 대중문화예술인들이 진출했다는 것은 우리사회의 달라진 분위기를 방증 한다. 문제는 이런 토대에서 과연 어떤 식으로 대중문화예술의 전반적인 수준향상을 불러오느냐는 것이다.
 
대중문화예술계가 장관을 배출했다는 만족감에서 스스로의 자리에 충실하지 못하고 안주하거나 거만해 질 때 국민들은 대중문화예술계에 차가운 시선을 보낼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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