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에게 묻는다 11]박진만의 '명품 유격수로 사는 법'

  • 등록 2007-09-03 오전 11:28:35

    수정 2007-09-03 오전 11:36:47

사진=삼성 라이온즈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김재박 - 이종범 - ? '
야구팬이라면 아무 질문이 없어도 '?' 자리에 어떤 선수의 이름이 들어가야 할지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누구도 '?' 대신 '박진만'이라고 써 넣는다해서 불만을 표시하지 않을 것이다.

삼성 박진만(31)은 자타공인 현역 최고 유격수라는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넓은 수비 범위와 빠른 판단,그리고 강한 어깨는 그의 수비를 명품이라 부를 수 있게 했다. 내야의 지휘관으로 유격수. 그의 수비가 특출나게 보일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수비는 타고나지 않는다
박진만은 지난 1996년 현대에서 데뷔했을때 부터 지금까지 내리 주전 유격수로 뛰었다. 인천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입단했으니 만 스무살도 되기 전부터 주전이었던 셈이다. 이쯤 되면 '천부적인 자질'이라는 말을 떠올릴 법 하다.

그러나 그는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수비는 결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공격은 타고나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수비는 얼마나 땀을 흘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수비가 무엇인지 알게된 것은 프로에 와서다. 김재박 당시 감독님이 날 인정해주셔서 집중 조련을 받았다. 처음 3,4년동안은 거의 방망이는 놔두고 글러브만 들고 다녔다. 정진호 수비 코치님의 맨투맨 지도를 받았다. 그때 진짜 기본기를 배울 수 있었고 이후 10년 정도 뛰면서 몸에 익힌 것이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

전지훈련 갔을때 타격 훈련 위주로 짜여진다. 그러나 난 정규훈련 외엔 거의 수비만 했다. 남들이 저녁 먹기 전 3,40분씩 특타 할때도, 야간에 웨이트 트레이닝 끝나고 방망이 칠때도 난 수비만 했다. 3,4년간은 방망이 잡은 시간이 거의 없었다."

▲유격수의 기본은 무엇인가
사실 기본을 물었을땐 어느정도 기술적인 대답을 기대했었다. 공을 쫓는 방법과 캐치,그리고 송구까지. 그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진만은 "유격수의 기본은 다른 곳에 있다"고 했다.

"김재박 감독님이 늘 강조하시는 것이 있다. '화려한 것도 좋지만 지금 던지는 투수에게 믿음을 주는 플레이를 해야 한다. 안정감있는 플레이, 관중들에게 볼거리를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승리가 먼저'라는 것이다.

유격수의 기본은 순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1번부터 4번까지 차례가 있는거다. 공을 따라가고 잡고 던지고 정확해야 한다. 다른 것이 아니라 그게 기본기다. 유격수는 우선 공을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잡기도 전에 던지는 걸 먼저 생각하면 절대 안된다. 무조건 실책이 나온다. 공을 잡아야만 던질 수 있고 아웃 시킬 수 있는거다. 어떤 폼이든 우선 빨리 공을 잡아야 한다.

▲수비위치 선정방법
박진만은 예측수비의 1인자다. 타자에 따라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빼어나다는 뜻이다. 잘 맞은 타구도 어느샌가 그 자리에 가 있는 박진만 때문에 좌절해야 하는 선수들이 부지기수다.

"프로에서 거의 10년 가까이 하다보니까 상대 타자에 대한 분석이 돼 있다. 우리 투수들이 가지고 있는 구종을 생각하고 타자들을 분석한다. 타자들의 방망이 나오는 각도 등을 유심히 관찰하면 다들 그만의 버릇이 있다. 그런 것들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머리에 넣어둔다. 투수와 포수들이 분석하듯이 나도 타자를 분석한다."

좀 더 확실한 이해를 위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크게 나눠 2루쪽으로 가 있어야 하는 타자와 3루쪽으로 가야 할 타자를 물었다.

3루 : 좌타자인 KIA 장성호는 밀어치기도 잘하고 당겨치기도 잘한다. 특히 스윙 각도가 좋아 투수 입장에선 몸쪽을 들어가기 쉽지 않다. 바깥쪽으로 던지는 비율이 높다. 강타자는 그런 것도 당겨치려 하지만 성호는 그런 걸 잘 밀어친다. 3루 쪽으로 가 있는 비중이 높아야 한다.

2루 : 우타자인 두산 홍성흔은 당겨치기 위주 타자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2루쪽으로 가서 수비한다. 성흔이 같은 경우 당겨쳐서 잘 맞은 타구는 땅볼이 거의 없다. 좌익수 쪽으로 라이너나 플라이로 날아간다. 그건 내가 잡을 수 없는 공이다. 대신 당겨친 땅볼은 2루 쪽으로 많이 나온다. 
                                                                               ▲보이지 않는 호흡
사진=삼성 라이온즈
야구는 공 하나에 희비가 엇갈린다. 투수와 포수는 어떻게든 좋은 타구를 허용하지 않기 위해 공 하나를 던질때마다 열심히 사인을 주고 받는다.

그때 유격수의 사정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투수가 잘 던질 수 있고 타자가 치기 힘든 공에 대한 것만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순간, 유격수도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에 따라 수비 위치와 베이스 커버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자가 1루에 있을 경우 투수가 바깥 쪽으로 사인을 내면 우타자가 칠 수 있는 범위가 우익수쪽일 확률이 높다. 그러면 베이스 커버를 유격수가 들어가야 한다. 일구 일구마다 포수의 사인을 보고 2루수와 사인을 교환 한다. 글러브로 입을 가리고 둘만의 대화를 나눈다."

도루 시도가 있을때 2루수와 겹치지 않기 위해서도 사인 캐치는 중요하다. 옛날 야구에선 '좌타자면 유격수,우타자면 2루수'가 기본이었지만 이젠 또 달라졌다.

박진만은 "요즘은 타자들이 많이 향상돼서 바깥쪽을 당겨치는 타자는 거의 없다. 왼쪽 타자라고 무조건 유격수 들어가다간 큰 코 다친다. 역시 구종에 따라 결정 해야 한다. 포수의 사인을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숫자? 팀이 이기는 것이 내 기록이다
박진만의 탁월함을 숫자로 표시하기는 매우 어렵다. 고전적 방법인 수비율에서도 나름 최신 버전인 레인지 팩터(9이닝 환산 타구 처리율)에서도 그는 늘 중하위권에 랭크돼 있기 때문이다.

박진만에게 이에 대해 물었다. 그는 "수비율은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레인지 팩터는 뭔지도 모른다"고 답했다.

"(이)종범이 형은 유격수할때 거의 매년 20개 이상 실책했다. 그러나 모두 그를 최고라고 했다. 그만큼 범위가 넓었다는 것이다. 다른 유격수가 그냥 안타 줄 것을 종범이형은 어떻게든 잡으려고 했고 또 많이 잡아서 1루까지 던졌다. 안 잡아도 되지만 종범이형은 절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실책이 많았지만 어차피 안타될 공이었다. 반대로 열심히 해서 잡아낸 경우가 많았다. 숫자로는 종범이형 보다 좋은 유격수들이 여럿 있었겠지만 모두 종범이형만 기억하지 않나."

여기서 다시 박진만이 생각하는 유격수의 기본기를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박진만은 "유격수는 차례를 지켜야 한다. 가장 첫 단계는 공을 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좋은 유격수란 공을 잡겠다는 의욕이 강한 선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진만에게 동의를 구하자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려고 하면 그건 아마추어다. 프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플레이를 해야 한다. 그러다 실책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걸 두려워해선 안된다. 두려워하면 끝이다. 숫자가 좋은 유격수는 될지 몰라도 진짜 좋은 유격수는 될 수 없다. 팀 우승이나 MVP가 기록에 남는 것이지 연속경기 무실책 같은건 기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덧붙이기 : 인터뷰가 끝난 뒤 "좋은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며 감사의 뜻을 전하자 박진만은 "누구나 다 아는 얘기를 했을 뿐"이라며 특유의 눈 웃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다 알지만 다 하지는 못하지 않느냐"고 하자 잠시 생각하더니 "수비는 할 수록 느는거다. 누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 관련기사 ◀
☞박진만이 박기혁에게 전하는 말
☞박진만 "나는 이종범 같은 선수가 되고 싶었다"
☞[달인에게 묻는다 10]김동수의 '좋은 볼배합이란 무엇인가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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