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들의 친구 야구] ‘병현아, 윤 의사가 지하에서 운다’

  • 등록 2007-12-07 오전 9:10:53

    수정 2007-12-07 오전 10:04:36

▲ 김병현 [로이터/뉴시스]

[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지난해 여름이었던가요. 한국의 대표 보수 언론이 노무현 대통령을 ‘계륵(鷄肋)’이라고 표현해 청와대가 발끈한 적이 있습니다.

말과 글에는 그것을 내뱉고 쓴 사람의 생각과 인식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습니다. 그래서 청와대도 ‘금도를 벗어난 언론의 사회적 일탈’이라면서 반박 성명을 내고 해당 언론사에 취재 거부란 극약 처방을 내렸습니다.

최근 김병현이 베이징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전에 출전하고 돌아온 선배 박찬호에 대해 “찬호 형이 나라를 위해 많이 애쓰신 것 같다. 옛날로 따지면 윤봉길 의사 같은 분”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한 선배에 대한 존경의 뜻을 나타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지나친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올림픽 본선 티켓이 걸린 대회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게 과연 주권을 잃은 나라를 찾기 위해 엄중한 경계를 뚫고 들어가 적장들을 향해 폭탄을 던진 의거에 비견할 만한 일인지요? 세상에 이런 유비추리가 어디 있고 과장법이 어디 있습니까?

선배가 숟가락 하나 더 얹어놓는 일에 불과한 스프링캠프 초청 선수 계약을 내팽개칠 수도 있다며 ‘정의의 선택’을 했다고 잔뜩 힘줘 말한 것에 대해 후배로서 지극한 존경의 염으로 화답하느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까? 한마디로 난센스요, 견강부회입니다.

따지고 보면 선배의 국가대표 출전과 후배의 사양도 프로선수로서 철저히 본인들의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결과도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스스로도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가 됐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다만 후배는 한 시즌을 치르고 난 뒤 또 대회에 나가는 게 경험상 좋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고, 선배는 역발상으로 그렇게 했다는 차이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 선배가 윤봉길 의사라면 후배는 무엇이 되는 것입니까. 이런 스스로 누워서 침 뱉기가 또 어디 있나요.

이번 ‘윤봉길 의사’ 운운으로 다시 한번 확인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소위 메이저리그파들의 인식 수준입니다. 그것은 바로 지나친 자의식입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의 말씀이나, 철저한 무위(無爲)로써 하라는 노자의 경지까지는 바랄 수야 없겠지만 자신들이 하는 일마다 왜 그토록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브랜드를 갖다 붙이는 것인지요.

무릇 다 삶의 한 부분이고, 선택의 일부가 아니던가요. 그렇게 하기까지 그들의 고민의 질량을 결코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기까지입니다. 거기에 치장과 분식이 덧칠된다면 그저 공허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한국 프로야구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라고 해서 왜 그런 고민들이 없었겠습니까.

자의식의 비대화는 현재 코리안 메이저리거들이 직면한 부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는 물의 논리, 현실의 법칙을 깨닫지 못하고 화려했던 과거에 집착하고, 관념의 허공에서 허우적거리게 해 부진을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교타자로 우뚝 선 스즈키 이치로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항상 어떻게 하면 팬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가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신 내게 정말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면 좋고, 안 그러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더욱 자신감이 생기고 남을 의식하는 이치로가 아닌 진정한 나, 이치로가 됐다.”

자의식이라면 차라리 이렇게 덧칠 안 한, 액면 그대로의 자의식이 차라리 낫습니다. 과장되지 않아 훨씬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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