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한국의 월드스타④]월드스타, 내가 느낀 한계는 이것!

비 '언어', 이수만 '시스템', 심형래 '편견'...한계에 맞서 싸우는 그들
  • 등록 2009-06-05 오전 7:47:10

    수정 2009-06-06 오후 12:03:07

▲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그룹 회장, 가수 겸 배우 비, 봉준호 감독, 심형래 감독(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이데일리 SPN 최은영기자] 누구나 꿈을 꾼다. 특별한 사람들만 모인다는 연예계의 꿈은 더욱 광활하다.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되기가 어렵고, 밤하늘의 별처럼 어디서고 빛이 난다고 해서 '스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 그들이 꿈꾸는 최고, '월드스타'를 향한 도전은 그래서 더욱 의미 있고 또 힘겨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갈매기의 꿈'으로 유명한 미국의 소설가 리처드 바크는 '인간의 한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어떤 것을 자신의 한계라 주장하면 그것은 정말로 자신의 한계가 된다" "자신의 한계에 동의하고 충분히 인정하라, 그러면 정복된다".

언뜻 들으면 모순투성이의 괴변처럼 들릴 수 있으나 두 문장 사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한계는 인정하되 그것에 함몰되어선 안 된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별이 되길 꿈꾸는 우리네 스타들도 자신들의 한계를 모르지 않았다.

월드스타 비는 자신의 한계로 '언어'를 꼽았으며, '디 워'로 국내 팬들의 논란을 딛고 미국 진출의 신기원을 이뤄낸 심형래 감독은 '편견'을 자신의 최고 한계로 지적했다.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 존 조는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의 벽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으며, 최근 가수 보아를 전 세계 팝시장의 메인스트림이라 할 수 있는 미국시장에 선보인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그룹 회장은 현지 인프라 결여 등 시스템의 한계를 크게 느끼고 있다고 고백했다. 봉준호 감독은 '투자의 한계'라면 모를까 '창작의 한계'는 없다며 '나 자신이 곧 세계다' 식의 자신감을 피력해 보이기도 했다.

여기서 비의 고백은 특히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타고난 재능과 무서운 열정으로 가수에서 배우로, 자국을 넘어 세계 최정상의 자리까지 넘보고 나선 그다. 그는 늘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넘어왔다. 편견 심한 할리우드에 한국인으로 첫 발을 디딘 스타는 배우가 아닌 가수 출신의 비가 처음이었다. 영화 '스피드 레이서'로 할리우드에 첫 입성한 비는 이후 애니메이션 '쿵푸팬더' OST에 참여하며 미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 했고, 그의 도전은 첫 할리우드 주연작 '닌자 어쌔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가 세계진출을 앞두고 가장 먼저 한 것은 바로 영어공부였다. 한 편의 영화를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보며 대사를 외우다시피 반복해 따라했고, 하루 24시간 영어 선생님과 함께 생활을 하며 언어를 익힌 적도 있다. 지금 이 순간도 그는 영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 배우들만큼의 언어 실력을 갖출 수 없음을, 그로 인한 한계를 비는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를 실현함에 있어 언어 문제는 비단 비만의 고민이랄 수 없다. 2년 전 칸국제영화제에서 전도연이 영화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 이창동 감독은 귀국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말을 농담처럼 던진 적이 있다.

"모 감독이 그러더라. '캐리비안의 해적' 3편을 따돌리면 국제적인 사건이 되니까 그러고 나서 할리우드로 진출해라, 그래서 '캐리비안의 해적' 4편을 만들라. 송강호도 해적으로 나오라고 해라. 하지만 영어가 안 되니 벙어리 해적일 것이다. 농담이다. 하지만 이 말 속에 한국에서 영화를 하는 사람들의 뼈아픈 현실이 있는 것 같다."

이처럼 언어는 장르를 불문하고 세계화를 꿈꾸는 많은 국내 스타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영어 구사가 완벽하지 않으면 대사 전달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또 연기력 논란으로까지 비화될 수 있다. 가수들도 언어의 벽을 넘지 못하면 노래를 통한 관객과의 원활한 소통이 곤란해진다. 유년시절을 미국서 보내 원어민 수준의 영어 구사가 가능한 김윤진, 다니엘 헤니 등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한 예만을 봐도 세계화에 있어 언어 해결의 중요성을 짐작해볼 수 있다.
▲ 영화 '엑스맨 탄생 : 울버린'의 다니엘 헤니, 드라마 '로스트'의 김윤진, 그리고 올해 말 개봉을 앞두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 '닌자 어쌔신'에서 첫 주연을 맡은 비(사진 왼쪽부터).

언어가 세계화를 꿈꾸는 많은 스타들이 넘어야할 1차 관문이라면 인종차별적 시선과 동양인이라는 편견에 맞서 싸우는 일은 2차 과제다. 언어가 안 되다 보니 우리보다 한 발 앞서 할리우드에 입성한 중국 배우들 상당수가 말 보다는 몸으로 세계화를 꾀해왔다. 동양인은 미국시장에서 연기력이 훌륭한 배우로 인식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액션 전문 배우 정도로만 취급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영화 '해롤드와 쿠마' 시리즈로 유명한 재미동포 배우 존 조는 "할리우드의 인종차별에 '노(No)'를 외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배우의 가장 큰 무기는 특정 역할을 거부하는 것. 아시아계 배우들이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무리한 요구에 모두 '노~'라고 외친다면 영화 속 정형화된 아시아계의 나쁜 이미지는 충분히 없앨 수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 또한 편견에 맞서는 게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속내를 드러내도 그들이 날 계속 배우로 써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 무엇보다 컸다. 하지만 자신의 실력을 믿고 배우로의 자존심을 세우니 상황은 달라졌다. 서구인들은 아시아계를 잘 몰라서 부정적으로 그릴 뿐, 아시아계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특정 장면과 대사를 지적하면 그들도 충분히 수긍을 하고 고치더라는 것이다. 최근작 '스타트렉 : 더 비기닝'에서도 그는 무사 등 몸 연기를 필요로 하는 캐릭터가 아닌, 일본계 일등항해사 역할을 맡았다. 존 조는 세계화를 꿈꾸는 한국의 젊은 배우들에게 인종적인 부당함에 제 목소리를 내라고 일관되게 충고한다.

영화 '디 워'로 세계시장 진출의 꿈을 이룬 심형래 감독은 세계로 나아가는 우리 스타들을 국민들이 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 같은 당부에는 자신의 경험도 적잖이 깔렸다. 심형래 감독은 국내외 편견에 온몸으로 맞서 싸워온 인물이다. 그가 개그맨 출신이라는 한계를 딛고 '용가리' 이후 6년 만에 '디 워'를 선보였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되겠어? 또 망하겠지' 하는 삐딱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혹자는 '새로운 사기극을 준비한다'며 의혹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2007년 논란과 화제 속에 국내 영화계를 뜨겁게 달군 '디 워' 신드롬은 바로 그런 역경 가운데 생겨났다. 한국영화 최초로 미국 전역에 와이드릴리즈 개봉이 결정됐을 때에도 논란은 사그라질 줄 몰랐다.

심형래 감독은 당시를 떠올리며 "세계화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며 "그런데 우리나라 스타들은 세계진출을 함에 있어 불필요한 또 한 단계를 거친다. 바로 국내 팬들의 편견을 넘어야 하는 게 그것이다. 한국의 스타를 자국의 국민들이 응원해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대체 어디서 힘을 얻어 거대한 세계와 맞서 싸울 것인가. 김연아, 박지성 선수의 경기를 응원하듯,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를 전세계에 널리 알릴 우리의 스타들도 응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스타를 키우는 제작자 입장에선 시스템의 부재가 절대적으로 아쉽다. 최근 가수 보아를 미국시장에 진출시킨 스타 제작자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그룹 회장은 "문화산업 시스템, 네트워크 등 다방면의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미국시장의 스타들과 제대로 경쟁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세계를 무대로 성공하기 위해선 질 높은 콘텐츠와 우수한 인재, 그리고 시스템이 3박자를 이루어야 하는데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한국인은 어느 나라 사람보다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으며 항상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며 "이런 한국의 능력 있는 아티스트들이 미국에 좀 더 쉽게, 효과적으로 진출하기 위해선 한국과 미국 사이 다리 역할을 해줄 전문 에이전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데 현재로선 전무하다. 이것이 한국의 월드스타 앞에 놓인 가장 큰 한계다"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더불어 한국의 음악과 영화시장이 튼실하지 못한 점도 문제라고 봤다. 스타와 더불어 콘텐츠의 세계화를 위해선 자국 내 기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2002년 이후 불법 다운로드 등의 영향으로 한국의 음악·영화산업이 급격히, 그리고 빠른 속도로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화 이전에 한국대중문화산업 전체의 뿌리가 흔들리는 것으로 환경적, 제도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경고했다.

이 회장은 해외진출의 성공 여부를 가름하는 중요 요소로 '현지화'도 들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 나라의 문화시장에 맞는 프로모션과 마케팅 방식을 따라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이 회장의 세계화 철칙. 이 회장은 차후 SM엔터테인먼트의 미국법인인 SM USA가 보아 등을 미국서 론칭시킨 경험을 살려 그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렇듯 우리의 스타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더불어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지 또한 분명했다.

비는 처음부터 월드스타를 꿈꿨던 건 아니라고 말했다. 당초 꿈은 우리나라 최고의 가수가 되는 것.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달렸고, 대중은 그의 재능과 노력을 인정했다. 그런 가운데 비는 '할리우드'라는 더 큰 꿈을 가슴 속에 품게 됐다고 한다. 비는 "한계는 분명 있겠지만 한계를 한계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다"며 "대신 노력은 반드시 값진 결과를 낳는다는 진리를 믿겠다"고 말했다.  
▲ 비 전도연 존 조 보아 김윤진 배용준 전지현 봉준호 감독 이병헌 박찬욱 감독 다니엘 헤니 문 블러드 굿(맨 윗줄 왼쪽부터 차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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