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生 자막시대①]예능프로 '보이지 않는 손'...자막(字幕)의 무한 진화

  • 등록 2008-06-10 오후 12:43:10

    수정 2008-06-10 오후 3:07:54

▲ MBC '무한도전'과 KBS 2TV '해피선데이' '1박2일'


[이데일리 SPN 양승준기자] ‘잘 쓴 자막 하나, 열 게스트 안 부럽다!’

예능프로그램은 자막 전성시대다. 폰트와 색깔은 자막이 가지고 있는 매력의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자막의 말맛을 통해 프로그램만의 개성을 음미한다.

프로그램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출연자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거나 지극히 상황 설명적이었던 자막이 최근들어 가파른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PD의 주관이 개입되며 요즘 자막은 개성을 입고 입체화되기 시작했다. 자막이 프로그램 안에서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살아있는 캐릭터로 자리매김하며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막의 변화를 주말 예능 프로그램 양대 산맥인 MBC ‘무한도전’과 KBS 2TV ‘해피선데이’ ‘1박2일’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 까칠한 주관적 자막의 힘!...웃음의 '재벌구이'

“이러고 있다”

위 자막은 ‘무한도전’이 유행시킨 자막 중 하나다. 가령 정형돈이 방송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진상댄스’를 추고 있을 때면 ‘정형돈이 막춤을 추고 있다’라고 설명하지 않고 ‘뭘 해도 주책맞고 어설프다’라는 주관적인 생각을 자막에 입힌다.
 
비유도 마찬가지다. 지난 5월 17일 방송된 ‘무한도전-창작 동요제’편에서는 대상이라는 말에 좋아 날뛰다 바닥에 넘어진 정준하를 보고 ‘넘어진 정준하’라고 쓰지 않고 ‘미국산 소 쓰러지듯’이라는 자막을 넣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주관적인 자막을 쓰는 이유는 무엇보다 시청자들에게 한번 더 웃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예로 든 정준하의 자막은 그가 넘어진 상황이 1차적인 몸 개그의 웃음을 선사했다면, 광우병소에 대한 전국민적인 관심사를 이용해 ‘미국산 소 쓰러지듯’이란 자막으로 한번 더 시청자들을 폭소케 만드는 것이다.

‘1박2일’ 이명한 PD는 자막의 이런 주관적인 흐름의 원인을 요즘 예능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흐름 자체가 객관보다는 주관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능프로그램은 일종의 게임과 같기 때문에 답이 뻔히 보이는 상식적인, 객관적인 자막보다 제작진의 시선과 스토리텔링을 느끼며 변칙이 있는 주관적 자막이 시청자들을 더욱 몰입하게 한다는 것의 그의 말이다.

▲ MBC '무한도전'에서의 정형돈과 KBS 2TV '해피선데이' 1박2일'의 이승기


◇ 주관적 자막은 '제2의 캐릭터 산파!'

자막은 프로그램 속 캐릭터를 만드는 산파가 되기도 한다. 방송 중 출연진의 입에서 순간 흘러 나와 사라질 수 있었던 웃음의 포인트를 글로 반복적으로 전달하며 캐릭터를 구축하는 일등 공신이 바로 자막이기 때문이다.

가령 ‘1박2일’의 ‘은초딩’의 경우, 방송 초기 '코요테'의 신지가 은지원의 철없는 행동을 보고 ‘초딩같다’고 흘린 말을 제작진이 자막을 통해 ‘은초딩’이라고 반복적으로 은지원과 연결시켜 힙합전사에게 천진난만함을 입힐 수 있었다.

또, 이승기가 넘어진 상황에서 ‘넘어진 승기’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역시 허당’이라는 식으로 자막을 써 캐릭터와의 연결을 시도하며 그 특징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이런 주관적인 자막의 성격은 만드는 사람은 다르지만 대부분이 ‘까칠함’이란 교집합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무한도전’이 동네형의 입장에서 다섯 멤버들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시니컬하게 바라본다면, ‘1박2일’은 ‘제7의 멤버’ 상근이의 자막을 통해 제작진이 차갑게 개입한다. 이런 ‘까칠한’ 자막은 최근 솔비, 서인영, 김구라, 박명수 등의 거침없는 예능 캐릭터의 인기와 맞물려 시청자들에게 더욱 어필하고 있기도 하다.

◇ 주관적인 자막의 부작용...시청자 상상력 제한, 예능프로그램의 패턴화

주관적인 자막의 이런 매력 뒤엔 그 폐해도 적지 않다. 제작자의 의도나 생각이 지나치게 담긴 자막은 오히려 시청자의 상상력을 저해한다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한 시청자는 “요즘 자막들은 어떤 부분에서 웃어야 할지 등 시청자들의 리액션까지 간섭하고 있다”고 주관적인 자막에 대한 문제점을 꼬집었다.

또 ‘까칠한’ 성격의 자막이 점점 예능프로그램에서 패턴화되고 있다는 것도 프로그램 제작진들 사이 위기 의식으로 다가오고 있다.

‘무한도전’ 조욱형 PD는 “이제는 까칠한 성격의 자막은 예능프로그램에서 일반화되었다”며 “시청자들이 식상해질 시기가 온 만큼 현 자막의 관성을 깨고 새로운 패턴의 자막에 대해 여러모로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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