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우의 PS 만약애(晩略哀)]겁에 질린 먹이를 사냥하는 법

  • 등록 2007-10-15 오후 10:34:50

    수정 2007-10-15 오후 11:21:11

사진=두산베어스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김광수 두산 수석 코치는 '달인에게 묻는다' 인터뷰를 하며 이런 말을 했다. "난 동물의 왕국을 아주 좋아한다. 동물들의 약육강식 세계는 승부의 세계와 많이 닮아 있다."
 
김 코치는 이어 "사자는 아주 작고 힘 없는 먹잇감을 잡을 때도 절대 서두르거나 방심하지 않는다. 쉬워 보이는 상대도 헛점을 보이면 금세 도망갈 구멍을 찾아낸다. 그게 생존의 세계다"라고 덧붙였다.
 
두산 좌익수 김현수는 플레이오프 2차전을 앞두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1차전을 앞두고는 "너무 긴장해 그라운드에 오바이트를 할 것 같아 밥도 먹지 않았다"고 했을 정도다. 결국 1차전은 4타수 무안타였다.
 
김경문 두산 감독은 "김현수와 채상병이 가장 긴장하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차전서도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첫 타석에선 맥 없이 삼진으로 물러났다. 선두타자 이종욱의 깜짝 홈런으로 달아오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삼진이었다.
 
눈길을 끈 것은 초구에 나왔던 기습 번트 시도였다. 초구 변화구에 번트를 대려다 파울이 되고 말았다. 기본에 어긋난 플레이였다.
 
번트의 대가로 불리는 전준호는 "변화구,특히 커브엔 기습 번트시도를 하면 안된다. 투수가 공을 던진 뒤 수비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기 때문에 실패 확률이 높다. 그게 기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현수는 3회 두번째 타석에서도 볼 카운트 1-1에서 기습 번트를 시도하다 파울이 됐다. 이때도 역시 변화구였다. 기본이고 뭐고 생각할 여유가 없는 듯 보였다. 상대에게 얕보이기만 좋은 장면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김현수는 이 타석에서 우월 솔로 홈런을 때려냈다. 볼 카운트 2-3에서 가운데서 몸쪽으로 낮게 몰린 직구를 받아쳐 큼지막한 타구를 만들어냈다.
 
동물의 왕국에 빗대 보면 한화 정민철-신경현 배터리는 사자였고 김현수는 아기 사슴이었다. 사슴은 이미 약점을 다 드러내놓고 바들 바들 떨고 있었지만 아차 하는 사이 사자의 코를 뒷다리로 걷어차고 달아나 버린 셈이었다.
 
다시 홈런을 친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김현수가 번트를 실패하며 볼 카운트는 2-1이 됐다. 정민철에게 충분한 여유가 있는 카운트였다. 그러나 이후 변화구는 커트되거나 크게 빠졌고 직구 컨트롤도 맘 같질 않았다. 결국 2-3에서 직구 승부를 택하다 큰 것 한방을 맞고 말았다.
 
당시 상황은 한화가 2-1로 앞서 있었고 원 아웃이 된 뒤였다. 만에 하나 볼넷이 되거나 맞더라도 단타로 막았다면 충분히 다음 수를 둘 수 있는 타이밍이었다. 좀 더 코너워크에 신경을 썼거나 유인구 승부를 했다면 어떘을까.
 
실투라 할 수도 있었지만 정민철이 보다 집중력을 보였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수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김현수의 홈런 이후 기세가 오른 두산은 이후 재치있는 주루 플레이로 두점을 더해 승부를 뒤집었고 결국 다시는 리드를 빼앗기지 않은 채 2차전 승리를 챙겼다.
 
더 큰 문제는 1패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 포스트시즌 첫 경험인 김현수의 기를 살려줬다는 점이다. 폭주 기관차 같은 톱 타자 이종욱과 중심타선을 잇는 2번타자다. 그의 기세가 살아나게되면 두산의 질주는 더욱 거침없어진다.  
 
실제로 공을 제대로 배트에 맞히지도 못했던 김현수는 이후 타석에서 전혀 다른 선수가 됐다. 홈런 이후 내리 두개의 안타를 더 때려내며 승리에 1등 공신이 됐다. 앞으로 정민철과 신경현이 놓친 먹잇감이 더 큰 맹수로 변신해 돌아오게될지도 모를 일이다.   

*주(注) : 야구판에서 결과론과 가정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결과만 놓고 따져보면 누구나 승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과론은 야구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모두 감독이 되어 경기를 복기(復棋) 할 수 있는 것은 야구의 숨은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만약애(晩略哀)는 치열한 승부 뒤에 남는 여운을 즐길 수 있는 장이 됐으면 합니다.

만약애(晩略哀)는 '뒤늦게 둘러보며 느낀 슬픔'이란 뜻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 본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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