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N 영화 리뷰] '쌍화점', 세 남녀의 눈빛에 담긴 '애증의 서사극'

  • 등록 2008-12-29 오후 2:14:20

    수정 2008-12-29 오후 2:15:24

▲ 영화 '쌍화점'(사진 왼쪽부터 조인성 송지효 주진모)

[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고려는 원나라에 조공을 바쳐야 했다. 고려의 왕은 그런 현실에 분개했다. 하지만 왕(주진모 분)은 원나라 공주를 아내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원나라의 속국이었기 때문이다.

먼 이국으로 시집을 온 원나라 공주는 왕후(송지효 분)가 됐다. 남편이자 고려의 왕은 자신을 여자로 품지 않았다. 오히려 왕은 자신의 호위무사인 홍림(조인성 분)에게 마음과 몸을 주었다. 남자에게 남편의 마음과 몸을 빼앗긴 왕후는 여자로서 능욕의 세월을 견뎠다.

홍림은 왕에게 모든 것을 바쳤다. 왕을 위해 죽는 것을 당연히 여겼고 왕을 헤치려는 이를 몸으로 막았다. 자신의 몸을 탐하는 왕의 손길에도 의심 없이 옷깃을 풀었다. 왕은 그런 홍림만을 믿었다. 홍림이 왕을 대신해 왕후의 침소에 들게 된 것은 왕이 그에게 보여준 절대적 신임의 증표였다.

유하 감독의 ‘쌍화점’은 왕과 그의 호위무사 홍림, 그리고 왕후 세 명이 서로의 관계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다. 유 감독은 ‘쌍화점’의 제작발표회에서 “이 영화를 통해 고대 그리스의 비극이나 셰익스피어의 비극처럼 이야기의 원형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감독의 말처럼 ‘쌍화점’은 결국 세 남녀가 애증으로 파멸되어 가는 극적인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유 감독은 이를 위해 카메라의 시선을 인물들의 감정 선에 밀착시켰다. 카메라가 집중하는 것은 세 인물들이 서로의 관계 안에 놓여있을 때 떨리는 눈빛이다. 그 떨림은 단순히 눈동자가 흔들리는 물리적인 움직임뿐만 아니라 감정의 격류에 의해 불안해지는 내면의 떨림을 담으려 했다. 영화는 인물들 간의 정사 장면에서 손과 하체의 움직임보다 종종 인물들의 눈빛을 클로즈업 하며 인물들의 심리변화를 관객들에게 전한다.  
▲ '쌍화점'의 한 장면


주연을 맡은 주진모와 조인성, 송지효는 이를 위해 수 십 번의 재촬영을 감내해야했다. 유하 감독은 배우들의 동선보다 눈빛의 다양함을 이끌어내기 위해 배우들에게 같은 동작을 수도 없이 반복시켰다. 그런 과정에서 배우들은 진을 뺐고 자신을 비웠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맡은 인물의 눈빛을 체화했다.

그 정점에 서 있는 배우는 아무래도 왕을 연기한 주진모였다. 주진모가 보여준 고려 왕은 사랑과 분노가 혼합된 정염(情炎)에 불타 결국 자신 또한 산화하는 고대 비극속의 인물들과 흡사했다. 이는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든 캐릭터임에 분명하다.

‘쌍화점’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이후 근래 한국영화가 거의 시도하지 않은 ‘이야기의 근원’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세 남녀가 벌이는 치정은 결국 인간 사이의 ‘애정과 증오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외양은 사극이란 장르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안에 담겨진 서사 자체는 그닥 튀지 않는 게 ‘쌍화점’의 장점이다. 이는 애초 문학으로 예술관을 형성한 유하 감독의 전력이 묻어나는 영화적 장치이기도 했다.

다만 초반의 액션신 등을 비롯해 비오는 날 서고에서의 정사 장면 등 다른 영화에서 본 듯한 익숙하고 전형적인 장면들이 ‘쌍화점’의 신선도를 떨어트리고 있다.
 
세 명의 캐릭터에만 집중한 것은 영화 속의 주제를 펼치는데 효과적이었지만 다른 모든 것을 '부수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30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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