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구의 PD열전]'황우석 진실' 밝힌 용기, MBC 한학수 PD

  • 등록 2007-08-13 오전 10:43:15

    수정 2007-08-13 오후 5:26:50


▲ 한학수 PD(제공=MBC)

[이데일리 SPN 김은구기자] 2005년 말 한국사회는 큰 혼란에 빠졌다.
 
줄기세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한국 생명과학의 자랑으로 꼽히던 황우석 당시 서울대 석좌교수의 연구 결과가 조작된 것이라는 MBC ‘PD수첩’의 보도 때문이었다.

‘PD수첩’이 방영된 이후 방송사와 제작진은 당시 황우석 교수를 지지하는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와 취재과정에서의 윤리위반에 따른 질타를 받았고, 그 후유증으로 한동안 프로그램이 중단되는 불상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큰 충격과 논란을 일으켰던 ‘PD수첩’의 보도는 결국 검찰 및 서울대 조사위의 조사를 통해 사실로 판명됐다.

당시 그 프로그램을 제작했던 사람이 바로 MBC 시사교양국 한학수 PD(38)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한학수 PD는 2005년 6월 처음 제보를 받은 뒤 5개월여 간 자신에게는 전혀 생소한 생명과학에 대한 연구와 취재에 매달려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 프로그램 존폐, 가족과 인생을 건 취재..."솔직히 피하고 싶었다"

한학수 PD는 ‘황우석 사태’를 취재혔던 후유증 때문에 2개월여 전 담배를 끊었다고 했다. 이전까지 하루에 5~6개비 피우던 담배가 당시 취재 및 방송 과정에서 걱정과 스트레스 때문에 한 갑 넘게 늘었고, 이후 목소리가 가라앉는 증세가 생겨 좀처럼 회복이 안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사건이 한학수 PD에게도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제보자를 처음 만났을 때 믿어지지 않았어요. 세계적 권위의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의 표지 논문이 가짜라면서 증거는 없다는데 ‘미친 거 아닌가’ 생각도 했죠. 그런데 얘기를 하다보니 직관적으로 제보자에게서 진실함을 느꼈지만 사실 다루지 않고 피해가고 싶었어요.”

한학수 PD는 “전 국민이 성원을 하는 사람과 싸우는 것은 프로그램의 존폐, 가족과 인생이 걸린 문제라는 생각에 두려웠다”고 그때 힘들었던 심경을 털어놨다. 더구나 진실을 밝히는 과정도 어려울 게 분명하고 입증을 해도 국민들이 믿어줄지 걱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끈질기게 취재를 했고 2005년 11월22일 ‘PD수첩’에서 1차로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을 방송했다. 연구에 쓰인 난자가 기증이 아닌 매매된 것이었다는 내용이었다. 

방송이 준 충격은 그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한학수 PD의 휴대전화에는 ‘민족의 반역자’, ‘사지를 찢어 죽이겠다’ 등의 협박 문자메시지가 쏟아졌다.
 
인터넷에는 ‘이 가족을 죽이자’는 글이 적힌 한 PD 가족사진도 올라왔다. 한학수 PD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취재 윤리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언론의 질타를 받았고, 서울 여의도 MBC 본사 앞에서는 연일 당시 보도에 항의하는 촛불시위가 열렸다. 

비난이 거세지자, 결국 MBC는 12월4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PD수첩’의 방송을 무기한 중단했다.
 
다음날 대기발령을 받은 한학수 PD는 자신을 위로하는 과학 담당의 젊은 기자들과 술을 마시며 울었다. ‘내가 취재해온 진실이 영원히 묻히겠구나’ 하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그 때부터 젊은 과학도들로부터 인터넷을 통해 한학수 PD에게 항우석 교수의 논문이 갖고 있는 오류에 대한 제보가 오기 시작했다. 젊은 과학담당 기자들도 그를 지원했다.
 
한학수 PD가 빠진 상태에서 'PD수첩' 제작진은 한 PD에게 온 새로운 제보와 그가 고생하며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두번째 방송을 준비했다. 최문순 MBC 사장은 ‘PD수첩’ 팀의 취재 내용을 검토한 뒤 방송을 결정했다. 12월15일 마침내 황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진위여부에 대한 내용을 담은 ‘특집, ‘PD수첩’은 왜 재검증을 요구했는가’가 방송됐다. 한 PD가 대기발령을 받은 상태라 방송은 김현기 PD가 맡았고 한학수 PD는 스튜디오에서 방송 진행 과정을 지켜봤다. 
 
이후 검찰 수사로 취재 결과가 모두 사실이었다는 게 입증될 때까지 한학수 PD는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가족이 피해를 볼까 첫 보도 3개월여 후 이사도 했다.

그러나 한학수 PD는 지금 1년 반 전을 다시 떠올리면서 “사회를 위해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라며 “이제 적어도 논문 조작은 안된다는 인식이 사회에 자리가 잡혔잖아요”라고 말했다. 
 
▲ '황우석 교수 연구 조작'을 파헤친 MBC 'PD수첩'(제공=MBC)



◇ 프로그램은 내 삶... 상식과 가치관은 지킨다.

한학수 PD는 대학시절 현실에 대한 고민과 문제의식을 갖고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그리고 군에 입대,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직업을 고민하다 대학원 졸업 후 1997년 MBC에 입사했다.

‘PD수첩’에서 보여준 끈질긴 취재를 생각하면 기자가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한학수 PD는 “글 솜씨가 없는데다 대학시절 MBC ‘인간시대’, ‘다큐 스페셜’ 등을 감명 깊게 본 기억이 있어 다큐멘터리 연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시사교양국 PD가 됐죠”라고 밝혔다.

그는 PD가 된 뒤  ‘프로그램은 내 삶이다. 상식과 가치관에서 벗어나면 안된다’는 생각을 지켜왔다. 시사교양국에 배속된 후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이 같은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조연출을 거쳐 2000년 ‘생방송 화제집중’, 2001년 ‘생방송 모닝스페셜’로 연출의 기반을 다진 한학수 PD는 이후 사회성이 짙은 프로그램만 방송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여중생들이 치여 숨진 사건과 관련,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 미군 범죄의 면제부인가’를 제작했고, 이어 미군 병사의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자 ‘그들만의 재판, 미군은 무죄인가’의 제작에 참여했다.
 
“당시 방송을 본 한 네티즌이 인터넷에서 제안해 한국 최초로 촛불시위가 일어났어요. 첫 촛불시위를 주도한 게 ‘PD수첩’이었고 저도 역할을 담당했는데 2005년 ‘황우석 사태’ 때 촛불시위대가 저를 분노의 표적으로 삼을 줄 몰랐죠.” 

한학수 PD는 'PD수첩' 외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2004년 군 면제자의 문제를 다룬 ‘신의 아들과의 전쟁’, 2005년 한국 좌파의 역사를 다룬 ‘한국의 진보’ 3부작 등도 방송했다.
 
‘황우석 사태’ 이후에는 ‘W’에 이어 최근 ‘MBC 스페셜’로 자리를 옮겼다.

한학수 PD는 “‘황우석 사태’로 제가 진실의 아이콘이 된 것 같아 부담스럽기는 해요. 하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진솔하고 담백하게 프로그램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해요”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시사교양 PD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진정성이 가장 필요해요. ‘세상이 다 그런 거다’라고 생각하면 아이템이 진부해지고 진정성이 없으면 오래 갈 수 없거든요”라고 덧붙였다.

▶ 관련기사 ◀
☞[김은구의 PD열전]한학수 PD '커밍아웃 홍석천 복귀작전'
☞[김은구의 PD열전]한PD "촛불집회 나온 강원래 보며 가슴 아파 "

 
▶ 주요기사 ◀
☞김상경, 치과의 김은경씨와 10월7일 화촉
☞윤은혜, 회당 2000만원에 '커프' 출연계약 조만간 마무리
☞'마약 혐의' 가수 A씨 귀국할까...경제적 곤란에 측근 귀국 종용
☞['디 워' 500만!]배급사 쇼박스의 탁월한 위기관리능력
☞'무릎팍 도사' 배용준 나올까... 제작진 섭외 위해 제주도행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임지연, 아슬아슬한 의상
  • 멧갈라 찢은 제니
  • 깜짝 놀란 눈
  • "내가 몸짱"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